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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한다는 게 대화를 잘한다는 뜻일까요? 저는 꽤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말이 많으면 대화를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직접 부딪혀 보니 그건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상대방이 지쳐서 자리를 피하게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말을 가장 많이 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일방적 말하기, 그게 대화인 줄 알았습니다
20대 초반, 저는 가족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더 좋을 나이였고, 부모님은 말 안 해도 다 아시겠지 싶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첫 번째 오류였습니다. 침묵을 당연하게 여기면 관계는 서서히 굳어갑니다. 그리고 나중에 뭔가를 전달하려 해도 말문이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체감했습니다. 대화라는 건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란 정보를 전달하고 수신하는 상호작용의 전 과정을 뜻합니다. 즉, 내가 말하는 것만큼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커뮤니케이션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그 절반을 무시하면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 됩니다.
데이팅 프로그램을 보다가 특정 출연자의 행동이 눈에 밟혔습니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불편해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다가가고, 거절 의사를 들은 뒤에도 또 다른 상대에게 말을 걸고, 자기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오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처음엔 그냥 캐릭터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저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화를 해온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던 시절이요.
출연자 중 한 명이 그 사람에게 직접 말했습니다. "너무 솔직한 건 이기적일 수도 있어. 너의 마음이 편해지려고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잖아." 이 한 마디가 제가 지금까지 봐온 대화 관련 조언 중 가장 정확한 말이었습니다. 자기감정 표출(self-disclosure)이란 자신의 내면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행위를 뜻하는데, 이게 과도하거나 일방적으로 쏟아질 경우 상대방에게 심리적 부담이 되고 관계를 오히려 악화시킵니다.
경청, 듣는 척이 아니라 듣는 것
제가 사회초년생 시절에 가장 혼났던 것 중 하나가 경청이었습니다. 선배가 얘기하는 도중에 제 의견을 끼워 넣거나, 상대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반박부터 했습니다. 당시엔 그게 적극적인 참여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그냥 상대 말을 자르는 행동이었습니다.
경청(active listening)이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고 의도와 감정까지 파악하려는 능동적 행위를 뜻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적극적 경청이라고도 부르며, 상대가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핵심 요소로 봅니다. 미국심리학회(APA)에 따르면, 적극적 경청은 공감적 반응과 비판 없는 수용을 포함하며 관계 만족도를 높이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프로그램 속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대 여성 출연자는 "영식 님이랑 대화의 결이 정말 안 맞는 것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그 이유를 짚어보면 단순히 성격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한쪽이 자신의 감정과 상황만 전달하려 하고, 상대가 어떤 맥락에서 반응하는지는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막힌 벽한테 얘기하는 느낌"이라는 표현이 나왔는데, 이게 경청 부재가 만들어내는 결과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상황은 연애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팀 회의에서, 고객 응대에서, 심지어 가족 간 대화에서도 똑같이 반복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먼저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었을 때, 그다음 제 발언이 훨씬 잘 전달된다는 걸 직접 겪어보니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소통 방식, 고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잘못된 대화 방식은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굳어진 습관입니다. 그래서 바꾸기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더 많이 들으면 되지 않나?" 싶었는데, 막상 실천해 보면 자꾸 끼어들고 싶어지는 충동이 생깁니다. 이게 일종의 대화 패턴(communication pattern)인데, 반복된 행동을 통해 형성된 무의식적 말하기 방식으로, 의식적인 훈련 없이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소통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제가 실제로 써본 방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상대가 말을 마친 뒤 2~3초 침묵을 유지하고 나서 발언한다. 침묵이 어색하더라도 상대의 말이 완전히 끝났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상대방의 말을 요약해서 되물어본다. "방금 말씀하신 게 이런 뜻인가요?"라는 확인 질문 하나가 오해를 절반 이상 줄여줍니다.
- 내 감정보다 상대의 감정을 먼저 언급한다. "저는 이렇게 느꼈어요"보다 "그랬을 때 많이 힘드셨겠다"가 먼저 나오는 연습을 합니다.
-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속으로 한 번 더 고른다. 내가 지금 이 말을 하는 게 상대를 위한 건지, 내 감정 해소를 위한 건지 구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네 가지가 처음엔 굉장히 불편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경청을 의식하면 대화가 더 자연스러워질 줄 알았는데, 처음에는 오히려 어색하고 말이 줄어듭니다. 그런데 그게 맞는 방향이더라고요. 말의 양이 줄어도 밀도가 높아지면 관계는 오히려 가까워집니다.
공감(empathy)이란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인지하고 그것을 함께 느끼는 심리적 능력을 뜻합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에서는 공감 능력이 인간관계의 질과 정신건강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청이나 공감은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얘기가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실질적으로 써야 하는 기술입니다.
메타커뮤니케이션(metacommunication)이란 대화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즉 "우리가 지금 어떻게 대화하고 있는가"를 짚는 행위를 뜻합니다. 사실 많은 갈등이 말의 내용보다 말하는 방식에서 비롯됩니다. 제가 20대 초반 가족과 대화를 피하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말하는 방식의 문제였지, 서로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대화는 기술입니다. 타고나는 게 아니라 배우고 다듬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연습 중이고, 가끔은 예전 습관이 툭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적어도 지금은 상대가 말을 멈춘 이유를 먼저 생각합니다. 내가 할 말이 있어서 멈춘 건지, 상대가 불편해서 멈춘 건지를요. 그 구분 하나가 관계를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는 걸, 제 경험으로 압니다. 말을 잘하고 싶다면 먼저 잘 듣는 연습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