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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세우고 사흘을 못 넘긴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글 쓰는 습관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가 이틀째 밤에 유튜브 쇼츠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처음엔 의지력 탓을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뇌가 원래 변화를 싫어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겁니다.
더 맛있는 콜라를 거부한 사람들, 단순 노출 효과
1985년, 코카콜라는 20만 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결과는 압도적이었습니다. 골수팬들조차 눈을 가리고 맛을 보면 새로운 레시피를 선택했죠. 경영진은 자신만만하게 뉴코크를 출시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시위, 집단 소송, 불매운동이었습니다. 출시 79일 만에 원래 맛을 되살려야 했습니다.
왜 더 맛있는 콜라를 거부했을까요.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입니다. 단순 노출 효과란 어떤 대상을 자주 접할수록 특별한 이유 없이 그것에 호감을 갖게 되는 심리 현상을 뜻합니다. 미시간대 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의 연구에서 밝혀진 이 원리는 한자, 낯선 얼굴, 심지어 소리에도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학기 초에는 그냥 그랬던 사람이 학기 말엔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뇌 입장에서는 자주 보는 것이 곧 안전한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마주쳐도 해가 없었으니까요. 코카콜라의 빨간 캔, 그 특유의 톡 쏘는 단맛은 수십 년간 뇌에 안전 신호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더 맛있어도, 낯선 것은 뇌에게 잠재적 위협입니다. 결국 사람들이 거부한 건 맛이 아니라 낯섦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좋아서 자주 접하게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순서는 반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처음엔 별 감흥 없던 글쓰기 습관도 매일 노트를 꺼내다 보니 어느 순간 그게 없으면 허전했습니다. 자주 해서 좋아진 것이지, 좋아서 자주 한 게 아니었습니다.
손실 앞에서 멈추는 뇌, 손실 회피 편향
동전 던지기를 상상해 보십시오. 앞면이 나오면 150만 원을 받고, 뒷면이 나오면 100만 원을 잃습니다. 기대값을 계산하면 25만 원 이득입니다. 수학적으로는 반드시 해야 할 배팅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부합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 게임에 참여하려면 딸 수 있는 금액이 약 200만 원은 되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손실보다 이득이 두 배는 커야 겨우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손실 회피(Loss Aversion)란 같은 크기의 이득보다 손실을 훨씬 더 크게 느끼는 인간의 심리적 편향을 말합니다.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정립한 이 개념은 노벨 경제학상(출처: Nobel Prize)으로 이어질 만큼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 핵심 원리 중 하나입니다. 주식 계좌에서 -30%가 된 종목을 못 파는 것도, 비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니던 직장을 못 그만두는 것도 손실 회피 때문입니다.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소유 효과란 내가 소유한 물건에 객관적 가치보다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현상입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탈러의 실험에서 머그잔을 받은 사람들은 평균 24,000원을 받아야 팔겠다고 했고, 사려는 사람들은 평균 10,000원만 내겠다고 했습니다. 같은 물건인데 소유 여부만으로 가치가 두 배 넘게 달라진 겁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오래 쓰던 물건을 팔 때 뇌에서 신체 고통을 담당하는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저도 이 편향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사회적 기업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을 때, 처음엔 그 추상적인 목표 자체를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막연하지만 그걸 붙들고 있는 것 자체가 안전하게 느껴졌습니다. 뭔가를 잃는 것 같아서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목표를 더 작게 쪼개는 것조차 처음엔 손실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에페족이 수백 년째 활만 쓰는 이유, 현상 유지 편향
아프리카 콩고의 에페족은 활과 화살로 사냥합니다. 옆 부족은 그물을 써서 훨씬 더 많은 고기를 안정적으로 잡습니다. 에페족도 그물 짜는 법을 압니다. 옆 부족이 배불리 먹는 것도 매일 봅니다. 그런데 왜 안 바꿀까요. 인류학자들이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습니다. "그물 짜는 건 너무 귀찮잖아요."
이것이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입니다. 현재 상태를 바꾸는 것 자체를 손실로 인식하여 변화를 피하려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몇 주씩 숲에 앉아 그물을 짜는 건 지금 당장의 손실이고, 미래의 풍족함은 불확실한 이득입니다. 뇌는 당연히 오늘의 손실을 더 크게 느낍니다.
현대인도 다르지 않습니다. 나쁜 줄 알면서도 배달 음식을 시키고, 비전 없는 직장을 욕하면서도 다니고, 갉아먹는 관계인 줄 알면서도 못 끊는 것. 심리학에서는 이를 두고 "인간은 낯선 천국보다 익숙한 지옥을 선택한다"라고 표현합니다. 변화가 주는 불확실성의 공포가 익숙한 고통의 안정감보다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인텔의 앤디 그로브가 1985년 메모리 사업의 위기에서 동료 고든 무어에게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오늘 해고당하고 새 CEO가 온다면 그 사람은 뭘 할까요?" 대답은 "당장 메모리 사업을 접고 프로세서에 올인하겠지"였습니다. 그 순간 그로브는 자신들이 메모리 사업을 붙들고 있는 건 유망해서가 아니라 단지 지금까지 해온 일이었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제로베이스 사고법(Zero-Base Thinking)입니다. 지금까지 투자한 것을 모두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선택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묻는 방식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불편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진짜 답을 끄집어냅니다.
뇌를 설득하는 습관 설계, ABC 공식과 목표 세분화
일반적으로 습관 형성은 의지력과 동기의 문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써보니 의지력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소진됩니다. 하버드 긍정심리학자 존 에이커는 행동을 시작하는 데 20초 이상 걸리면 뇌는 그냥 포기한다고 말합니다. 나쁜 습관이 끊기지 않는 건 너무 쉽기 때문이고, 좋은 습관이 안 만들어지는 건 시작이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스탠퍼드 뇌 행동 설계 전문가 제프리 포그 박사가 제안한 ABC 공식(출처: Stanford Behavior Design Lab)은 이 문제를 구조로 푸는 방식입니다.
- A(Anchor, 앵커): 매일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에 닻을 겁니다. 양치 후, 커피 버튼 누른 뒤, 화장실 물 내리고 나서처럼 이미 자리 잡힌 행동을 기점으로 삼습니다.
- B(Behavior, 행동): 그 닻 뒤에 아주 사소한 행동을 붙입니다. 팔굽혀펴기 50개가 아니라 벽 짚기 한 번, 독서 1시간이 아니라 책 한 문장 읽기가 핵심입니다. 부담 없이 작아야 합니다.
- C(Celebration, 축하): 행동하자마자 1초 안에 스스로를 칭찬합니다. 주먹을 불끈 쥐거나 거울을 보고 윙크를 날리는 것처럼요. 이 순간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해당 행동이 뇌의 즐거운 기억으로 각인됩니다.
도파민(Dopamine)이란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하는 신경전달물질로, 목표를 달성했을 때 쾌감과 동기를 만들어내는 물질입니다. 중요한 건 도파민은 성취의 크기가 아니라 빈도에 반응한다는 점입니다. 올림픽 금메달과 길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주웠을 때, 뇌가 행복해하는 메커니즘은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저는 이 원리를 목표 세분화에 직접 적용해 봤습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추상적 목표를 마인드맵으로 쪼개다 보니, 당장 오늘 할 수 있는 실행 방법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목표를 그저 작은 존재로 둘지 작은 목표들을 지속적인 노출을 통해 큰 산으로 만들어 갈지는 여러분의 손에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