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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열 때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신 적 있으신가요? 남들은 다 잘 나가는 것 같은데 저만 제자리인 것 같은 그 느낌. 저도 고등학교 3학년 즈음 그 감각에 꽤 오래 잠겨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마주친 니체의 사상이 그 늪에서 빠져나오는 데 생각보다 큰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SNS가 키운 비교 본능, 그리고 무기력함
스크롤을 내리면 팔로워 수만 명에 빛나는 일상을 올리는 사람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저도 한때 그 화면을 보면서 "저 사람처럼 돈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첫 번째 목표로 삼은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방법도 몰랐고, 행동할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저 게시물 좋아요 수를 세면서 그날의 기분이 결정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사회비교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평가할 때 타인과의 비교를 기준으로 삼는 심리적 경향을 뜻합니다. 1954년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처음 제시한 이 이론은, SNS가 등장한 이후 그 파급력이 극단적으로 커졌습니다. 플랫폼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더 자극적이고 화려한 콘텐츠를 피드에 올려줍니다. 비교할 대상이 무한히 공급되는 구조인 셈입니다.
실제로 미국심리학회(APA)의 연구에 따르면, SNS 사용 시간이 길수록 불안감과 우울감 수치가 높아지는 경향이 확인되었습니다. 숫자로 확인되니 제가 그때 느꼈던 무기력함이 단순히 의지 문제가 아니었다는 게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니체가 말한 노예 도덕(Slave Morality)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딱 맞아떨어집니다. 노예 도덕이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부정하고, 타인이 가진 것을 질투하며 르상티망(Ressentiment), 즉 만성적인 원망과 증오의 감정을 쌓아가는 심리 상태를 가리킵니다. SNS 속 비교 심리가 그 전형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도 그때 좋아요 수에 기분이 좌우되던 그 감각이 정확히 이 상태였다는 걸, 훨씬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허무주의 앞에서 니체가 선택한 것
그런데 니체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보통 허무하면 뭔가로 채우려 합니다. 종교, 커뮤니티, 성취, 관계. 하지만 니체는 반대로 허무함 자체를 정면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허무주의(Nihilism)란 삶에 본래적인 의미나 목적이 없다는 철학적 입장을 뜻합니다. 르네상스 이후 신의 권위가 흔들리면서 인간은 스스로 삶의 기준을 세워야 했고, 그 자유가 오히려 공허함으로 이어졌습니다. 니체는 이 허무주의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니체의 영원 회귀(Eternal Recurrence) 사상은 그래서 처음엔 굉장히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이 개념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이 무한히 동일하게 반복된다는 사유 실험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을 똑같이 영원히 반복해도 괜찮겠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제가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더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삶에 정해진 의미가 없다면, 그 의미는 내가 직접 부여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나이를 100년이라 할 때 인간의 삶은 약 20초에 불과합니다. 그 짧은 시간을 타인의 기준에 맞추는 데 쓸 이유가 있을까요. 오히려 그 유한함이 지금 이 순간을 더 값지게 만드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Übermensch)은 근육이 넘치는 영웅이 아닙니다. 초인이란 외부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뜻합니다. 저는 이 개념을 처음 이해했을 때, 그게 대단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자기 삶을 자기 기준으로 사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뭘 하면 달라지는가
철학 이야기가 아무리 그럴싸해도 삶에서 아무것도 안 바뀌면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이 됐을 때, 기대했던 멋진 어른은 없었고 그냥 무기력한 저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처음 한 것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그냥 산책이었습니다.
산책을 하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화면 속 남들 이야기 말고 저 자신에게 계속 물었습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지?" 그러다 우연히 영상을 통해 접한 말 하나가 꽤 오래 남았습니다. 목표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매일 글을 쓰는 것', '꾸준히 움직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관점이 바뀌면서 제가 매일 하는 행동들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니체도 비슷한 맥락에서 조언합니다. 타인의 평가로부터 벗어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고독(Solitude)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고독이란 단순히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내면의 감각에 집중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니체는 하루 15분이라도 그런 시간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마음챙김 명상(Mindfulness Meditation) 연구에서도 유사한 효과가 확인됩니다. 마음챙김 명상이란 판단 없이 현재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훈련 방식입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등재 연구에 따르면, 8주간의 마음챙김 훈련이 불안과 우울 증상을 유의미하게 줄이는 효과를 보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특별한 기법이 없어도 됩니다. 그냥 걸으면서 지금 발바닥 감각, 지금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잡음이 줄어들었습니다.
정리하면, 니체의 사상을 일상에 적용하는 방식은 이렇게 단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 SNS나 뉴스 소비 시간을 하루 30분 이하로 의도적으로 줄이고, 그 시간을 산책이나 혼자 생각하는 시간으로 전환한다.
-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명사(부자, 유명인)가 아닌 동사(쓰기, 만들기, 배우기)로 다시 정의해본다.
- 하루 한 가지,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이 만족했던 순간을 기록하는 습관을 만든다.
- 허무함이 밀려올 때 그것을 없애려 하지 말고, 오히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전부다"라는 방향으로 받아들인다.
이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제 경험상 처음에는 산책을 해도 머릿속이 SNS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지만 그게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화면 속 타인이 아니라 지금 제 앞에 놓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허무함은 없애는 게 아니라 다르게 보는 겁니다. 어차피 삶에 정해진 의미가 없다면, 그 허무함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채울 수 있는 여백이 됩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20초를 소비할지, 아니면 내 기준으로 20초를 살지. 니체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그겁니다. 저는 산책에서 시작했고, 지금도 그 방향을 조금씩 다듬고 있습니다. 어디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시작은 남의 화면이 아니라 지금 내 발밑에서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