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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열 시간 넘게 직장에서 보내고도 "오늘 하루 잘 살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진짜 삶을 살아낸 건지, 그냥 시간을 버텨낸 건지, 한 번이라도 구분해보신 적 있습니까? 저는 그 질문을 동료의 말 한마디에서 맞닥뜨렸습니다.
익숙함의 함정: 버티는 삶과 살아내는 삶의 차이
퇴근 후 동료와 짧은 대화를 나누다가 꽤 당황스러운 순간이 있었습니다. "퇴근하고 보통 뭐 해요?"라는 질문에 저는 "집에서 쉬어요"라고 답했고, 상대방은 운동도 하고 책도 읽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하게 얼굴이 뜨거워졌습니다. 저는 하루 반나절하고도 두 시간 이상을 직장에서 보내고, 그걸 '알차게 살았다'는 위안으로 삼고 있었거든요. 근데 그 위안이 얼마나 얄팍한 건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행동과학(behavioral science)에서는 이를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라고 부릅니다. 현상 유지 편향이란, 변화보다 현재 상태를 선택하는 경향이 심리적으로 굳어진 상태를 뜻합니다. 매달 같은 날 통장에 꽂히는 월급, 매일 앉는 익숙한 책상, 매번 타는 같은 시간대의 버스. 이 반복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그것을 '안정'이라 부르고, 변화를 '위험'으로 느끼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이 익숙함이 삶의 주체를 조용히 바꿔버린다는 점입니다. 제가 직장에서 쏟아낸 시간은 분명 제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의 목적과 방향은 회사가 정해줬습니다. 저는 그저 주어진 틀 안에서 움직이는 일개미였던 셈입니다. 자기 결정권(self-determination)이란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감수하는 능력인데, 저는 그 능력을 거의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익숙함이 무서운 이유는 그게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불행하지 않으니까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거죠. 그런데 불행하지 않은 것과 행복한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키가이(ikigai): 사망률 1.5배 차이를 만드는 삶의 이유
이키가이(ikigai)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일본어에서 온 이 단어는 '오늘 아침에 눈을 뜰 이유', 즉 살아야 할 목적과 의미를 가리킵니다. 단순히 철학적 개념에 머물지 않고, 실제 연구 결과와 연결되어 있어서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삶의 목적 의식이 없는 사람은 그것을 가진 사람보다 사망률이 1.5배 높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이 수치는 흡연이나 과음 같은 건강 위험 요소에 버금가는 수준입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립보건원(NIH) 등재 연구에서도 삶의 목적 의식이 높을수록 심혈관 질환 위험이 낮고, 전반적인 건강 지표가 개선된다는 분석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 숫자로 보니까 실감이 다릅니다. 삶의 이유를 갖는다는 게 그냥 기분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몸에도 직접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키가이는 거창한 인생 목표여야 할까요? 제 경험상 그건 아닙니다. 저는 거창한 꿈 대신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퇴근 후 30분 책 읽기, 주 3회 가벼운 산책, 한 달에 글 한 편 쓰기. 처음에는 '이게 뭐가 되겠나' 싶었는데, 이 작은 습관들이 쌓이면서 하루를 마칠 때 느끼는 감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오늘 버텼다"가 아니라 "오늘 내가 정한 것들을 해냈다"는 느낌이요.
삶의 밀도(life density)란 개념도 여기서 나옵니다. 삶의 밀도란 동일한 24시간 안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 경험과 선택을 쌓아가느냐를 나타내는 질적 지표입니다. 같은 하루가 지나도 어떤 사람에게는 빽빽하게 남고, 어떤 사람에게는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길이가 아니라 농도의 문제입니다.
삶의 목적 의식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차이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역경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중심을 잡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 높다. 회복 탄력성이란 외부 충격 이후 본래 상태로 돌아오거나 더 성장하는 심리적 능력을 말합니다.
-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자기 선택의 근거가 있기 때문에 결정 속도가 빠르고, 결정 후 후회가 적다.
- 주변의 평가나 기준보다 스스로의 기준으로 하루를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 삶의 만족도(life satisfaction)가 높으며, 이는 소득·지위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100억 자산가라도 자신의 기준 없이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사는 사람이 있고, 평범한 월급쟁이라도 하루하루를 자기 뜻대로 설계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행복이 결과물이라면, 그 재료는 돈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뜻입니다.
주체적 선택: 불편함을 감수해야 비로소 생기는 것
제가 변화를 시작하면서 처음 부딪힌 건 피로감이 아니라 어색함이었습니다. 퇴근 후 책을 펼치면 손이 자꾸 스마트폰으로 갔습니다. 일부러 불편한 걸 선택하는 게 이렇게 낯선 일인 줄 몰랐습니다. 편안함을 포기한다는 게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보상 회로 자체를 재설계하는 과정이라는 걸 그때 몸으로 배웠습니다.
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에서는 이를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structuring)'이라고 부릅니다. 인지적 재구성이란,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의 패턴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훈련을 의미합니다. 핵심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고정된 자기 서사를 허무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나는 퇴근 후 쉬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사실 그건 믿음이 아니라 그냥 습관이었습니다.
핑계는 항상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는데, 변화를 결심하고 나서도 핑계 댈 상황은 줄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더 잘 보였습니다.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이번 주는 바빠서", "날씨가 추워서". 그런데 그 핑계들이 실제로 방해가 되는 게 아니라, 익숙함으로 돌아가려는 관성(inertia)이 만들어낸 신호라는 걸 알고 나서 달라졌습니다. 관성이란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물리적·심리적 저항력을 뜻합니다.
주체적 선택의 핵심은 거창한 전환점이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접근했습니다. 매일 먹는 점심 메뉴 하나를 스스로 고르는 것처럼, 퇴근 후 30분을 '내가 정한 일'로 채우는 것. 회사가 아닌 내가 주인인 시간을 딱 30분만 확보하는 것. 그게 쌓이면서 하루의 감각이 바뀌었습니다. 삶의 통제감(sense of control)이란 외부 상황이 아닌 자신의 선택이 삶을 이끌고 있다는 심리적 감각인데, 이 감각이 생기는 순간 피로의 질이 달라집니다. 그냥 지친 게 아니라, 내가 쓴 에너지로 지친 느낌이 생기거든요.
그리고 이 선택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하루를 설계하겠다는 결단. 그 용기가 있는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말에 저는 동의합니다. 용기 없는 자유는 금세 다시 타성으로 돌아가더라고요. 제가 직접 그 과정을 겪었으니까요.
관련해서 미국심리학회(APA)의 회복 탄력성 자료에서도 삶의 통제감과 목적 의식이 정신 건강의 핵심 보호 요인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회복 탄력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작은 선택의 반복을 통해 훈련되는 능력입니다.
결국 삶의 길이보다 삶의 농도가 중요하다는 말은, 거창한 인생 목표를 세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 퇴근 후 단 30분이라도 내가 정한 것을 해내는 것, 그 작은 선택이 하루의 밀도를 바꾸고 시간이 지나면 삶 전체의 감각을 바꿉니다. 저는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소파에 눕고 싶은 날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오늘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지?"라는 물음이 들 때, 그 물음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그 불편함이 생겼다는 게, 어쩌면 제가 삶의 주체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