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한동안 '놓아주기'라는 말이 그냥 듣기 좋은 위로의 말 정도로 느껴졌습니다.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말, 귀에는 들어오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경험,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주식 계좌가 2,000만 원 마이너스를 찍던 날에야 비로소 그 말의 무게를 실감했습니다. 이 글은 그 날 이후 제가 직접 부딪히며 깨달은 이야기입니다.
집착이 강할수록 몸이 먼저 망가진다
제가 처음 주식을 시작했던 건 20대 중반이었습니다. SNS 피드에 올라오는 또래의 성공 소식들을 보다 보니, 이상하게 조급해지더군요. 그래서 모아두었던 적금을 깨 단기매매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한 달은 운 좋게 800만 원 수익이 났고, 어느 순간 1,000만 원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수익이 실력이 아니라 운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며칠 후 2,000만 원 손실이 났습니다. 그 이후 저의 상태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장이 열리는 시간이 되면 본업은 뒤로 밀리고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거울을 봤는데, 충혈된 눈,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 삐죽삐죽 튀어나온 턱수염. 그 모습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등장합니다. 바로 신경계 이완(Nervous System Regulation)입니다. 신경계 이완이란 교감신경계의 과활성 상태, 쉽게 말해 몸이 위기 모드에 진입한 상태에서 벗어나 부교감신경이 우세한 안정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뜻합니다. 집착이 강할수록 신경계는 긴장 상태를 유지합니다.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고, 목소리에 힘이 빠지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고, 판단력 자체가 흐려집니다. 제가 거울 앞에서 느낀 회의감은 결국 신경계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신호였던 겁니다.
실제로 미국 심리학회(APA)의 스트레스와 의사결정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만성적인 고강도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전전두엽 피질의 기능이 저하되어 충동적이고 단기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손실을 메우려고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패턴, 바로 제가 그 상태였습니다.
집착이 강할수록 신경계는 경직되고, 경직된 신경계는 더 나쁜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이 악순환을 끊지 않으면 목표는 점점 더 멀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 그 악순환을 끊는 방법이 단순히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것'일까요?
무집착은 포기가 아니라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다
무집착(Non-attachment)이라는 개념은 불교 철학에서 오래전부터 다뤄온 주제이지만, 현대 심리학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등장합니다. 바로 심리적 유연성(Psychological Flexibility)입니다. 심리적 유연성이란 결과에 과도하게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현재 행동에 충실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수용 전념 치료(ACT,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에서 핵심으로 다루는 역량이기도 합니다.
저는 주식 계좌를 정리한 날, 단기투자에 들어가 있던 모든 금액을 빼서 장기 자동매수로 전환했습니다. 처음엔 포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가 신기했습니다. 본업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고, 하루하루가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손실을 메워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지자 오히려 더 넓은 시야가 생겼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Law of Attraction)에서 말하는 핵심도 결국 이것과 닿아 있다고 봅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란 자신의 내면 상태가 동일한 에너지 주파수를 가진 외부 현실을 끌어당긴다는 개념입니다. 집착하는 사람은 '아직 없는 상태'의 주파수를 발산하고, 이미 가진 것처럼 편안한 사람은 '이미 있는 상태'의 주파수로 존재한다는 논리입니다. 여기서 저는 에너지나 우주 같은 단어보다 신경계 상태로 이 개념을 해석하는 편이 더 납득이 됩니다.
취업 준비를 3년 동안 해온 어떤 분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첫해에는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고, 둘째 해엔 필기에서 떨어졌습니다. 3년 차에 비로소 합격했는데, 그 분이 스스로 밝힌 결정적인 차이는 '반드시 붙어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놨다는 점이었습니다. 기술이나 지식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난 게 아닙니다. 신경계가 이완되자 면접관 앞에서의 태도와 목소리, 눈빛 자체가 달라진 겁니다.
그렇다면 무집착 상태에서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제가 경험하고 관찰한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신경계가 이완되면서 판단력과 창의력이 회복됩니다. 같은 상황도 다르게 볼 수 있게 됩니다.
-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게 되어, 행동의 질 자체가 달라집니다.
- 특정 방향에 고집하지 않으므로, 예상치 못한 기회를 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에너지 자체가 달라집니다. 면접이든, 협상이든, 인간관계든 마찬가지입니다.
이 네 가지 변화는 '마음만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경계가 실제로 이완될 때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변화들입니다. 집착을 내려놓겠다고 의식적으로 다짐하는 것도 결국 또 하나의 집착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의지로 놓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꽉 쥐게 되는 경험이 반복됐습니다.
끌어당김의 실천, 결국 지금 이 순간에 달려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실제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에 오랫동안 꽤 거창한 답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답은 단순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것 없이도 괜찮은 상태를 조금씩 경험하는 것입니다.
유도 방출(Stimulated Emission)이라는 물리학 개념이 있습니다. 레이저 원리에서 나오는 개념인데, 쉽게 말하면 같은 주파수의 에너지가 쌓이고 쌓여 임계점에 이르면 폭발적으로 방출된다는 원리입니다. 목표를 향한 꾸준한 노력도 이와 비슷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매일의 작은 행동들이 겉으로는 아무 변화 없어 보이지만, 어느 시점에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경험,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제가 장기 자동매수로 전환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매일 시세를 확인하지 않아도, 정해진 금액이 꾸준히 쌓이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투자에 대한 불안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주식을 하기 전의 평온했던 제 모습이 조금씩 돌아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행복이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고 부릅니다. 쾌락 적응이란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겨도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뜻합니다. 목표를 달성한 순간의 기쁨은 잠깐이고, 결국 일상의 평정심으로 돌아온다는 겁니다(출처: Positive Psychology). 저도 수익이 났던 그 순간을 떠올려 보면, 며칠 지나지 않아 이미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1,000만 원이 당연해지면 그다음을 원하게 됩니다. 이 사이클을 알고 나면, 지금의 평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조금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소망을 갖는 건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그 소망이 없으면 지금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목표가 아니라 집착입니다. 집착은 결국 내면의 공허함을 외부 대상에 기대어 채우려는 시도에 불과합니다. 제가 주식으로 2,000만 원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이 사실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과 집착하는 것 사이, 그 경계는 생각보다 얇습니다. 중요한 건 방향을 잃지 않되 몸과 마음의 긴장을 계속 풀어주는 것입니다. 지금 혹시 남들의 가장 빛나는 순간과 자신의 현재를 비교하며 자책하고 계신가요? 그 비교가 오히려 목표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꾸준한 하루하루가 쌓이는 것을 믿고, 지금 이 순간 충분히 괜찮은 상태로 머무는 연습을 해보시길 권합니다